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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윤리, 선 허락 후 촬영, 결론

by chalkakjoon 2025. 8. 7.

 

사진 윤리

 

여행지에서 누군가 가족이나 연인의 사진을 찍고 있으면,
나는 보통 그 앞에서 멈춰서거나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지나친다.
내가 찍힐까 봐가 아니라, 촬영에 방해가 될까 봐서이다.

하지만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셀카봉을 들고 브이로그를 찍는 유튜버들을 마주친다.
혼잣말을 하며 시청자에게 말을 거는 모습은 당당하고 익숙해 보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그 화면 안에 내가 들어갈까 봐 불쾌감이 먼저 든다.

찍히는 것 자체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어떤 의도로, 어떤 각도로, 어떤 문맥 속에 내가 담기는가이다.
모자이크를 해준다 해도 찝찝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런 감정은 내가 카메라를 들었을 때도 늘 기준이 되어준다.
나는 ‘사진은 서사를 담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 없는 풍경보다, 이야기가 느껴지는 인물의 뒷모습이나
일상의 단면들이 더 마음을 끌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장면이라 해도,
인물을 특정할 수 있는 거리에서는 허락 없이 찍지 않는다.

 

선 허락 후 촬영

사진 관련 책이나 작가 인터뷰를 보면,
자연스러운 장면을 얻기 위해 ‘선 촬영, 후 허락’을 한다는 말을 자주 접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방식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100명 중 100명이 전부 허락을 받는다고 믿긴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일상을 무단으로 담는다면,
그건 기록이 아니라 침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선 허락 후 촬영’ 혹은 아예 사람을 담지 않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어느 날의 기억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걷던 어느 날,
멀리서 한 어르신이 무거운 맥주 박스를 나르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르신의 키보다 높은 박스 탑을 힘겹게 옮기시는 모습.
그 안엔 분명한 삶의 무게와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머뭇거리며 그 장면을 그냥 지나쳤다.
그분께 허락을 구할 용기가 없었고,
혹여 말을 건네 기분을 상하게 할까 걱정됐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는 분노가 피어올랐다.

“왜 나는 늘 이렇게 찍지 못하고 지나쳐야 하지?”
“왜 저 멋진 장면은 내 것이 되지 못하지?”

분노는 카메라를 향했다기보다는,
매번 주저하는 나 자신에게 향한 것이었다.

50미터쯤 지나쳐간 뒤, 결국 나는 다시 돌아섰다.
몰래 카메라를 들고 줌을 당겨 장면을 포착하려고 했다.
뷰파인더 안에 그 어르신이 들어왔고,
나는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손을 내렸다.

이건 아니다.
이 장면은 훌륭할지 몰라도,
내 감정은 이미 불편했고 결과물은 자랑스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무책임한 시선을 가진 누군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숨을 한번 깊이 들이쉬고,
용기 내어 그분께 다가가 말씀드렸다.

“어르신, 지금 장면을 담고 싶은데 잠깐 사진 찍어도 될까요? 개인적으로 너무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해서요.”

그 말에 어르신은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네~”
그 웃음 속엔 의아함보다 재미와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사진작가로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일상을 찍을 기회를 내어준다는 것,
그건 단순한 허락을 넘는 신뢰였다.

어르신은 이어 “귀가 잘 안 들리니 필요하면 가까이서 말해요”라고 하셨고,
나는 감사한 마음을 안고 조심스럽게 그 장면을 담았다.

그 사진엔 어르신의 뒷모습뿐 아니라,
용기를 내어 다가간 나의 서사, 그리고 신뢰로 허락된 관계의 감정도 함께 담겨 있었다.

 

결론

내가 생각하는 사진 윤리는 단순하다.
‘선 허락 후 촬영’, 혹은 ‘사람을 담지 않는 선택’
이 기준 하나면, 내 마음이 늘 가볍다.

그 이후로 상도역 근처에서 한 번 거절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괜찮았다.
찍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후련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걷는다.
멋진 장면을 만나면 잠시 숨을 고르고 다가간다.
거절을 당해도 후회는 없다.
왜냐하면 내 방식대로, 내 윤리 안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기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찍는 사람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담는 매체다.
그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면, 그 사진은 오래도록 빛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