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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대상 없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담는 법

by chalkakjoon 2025. 8. 7.

 

물리적 대상 없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담는 법


사진은 대개 ‘보이는 것을 기록하는 행위’로 이해됩니다. 셔터를 누르면 눈앞에 보이는 피사체가 이미지로 고정되고, 우리는 그 장면을 시각적으로 다시 경험합니다. 하지만 문철진 작가의 《사진이 달라지는 아이디어 100》에 실린 야구사진을 통해 깨달은 것은, 사진이 담아내야 할 대상은 단순히 프레임 안에 보이는 물리적 사물이나 인물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보이지 않는 것’, ‘프레임 밖의 상황’까지도 사진으로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1. 보이지 않는 것을 담는다는 것의 의미

우리가 흔히 사진에서 ‘대상’이라 하면 구체적인 사물, 인물, 풍경 등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상 뒤에는 그 순간의 분위기, 감정, 시간, 공간, 그리고 관객과 사진가가 공유하는 ‘무형의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한 인물의 표정만으로는 그가 처한 상황이나 내면의 갈등을 모두 알기 어렵지만, 주변의 빛과 그림자, 배경에 놓인 사물들, 또는 사진가가 선택한 프레이밍과 셔터 타이밍이 그 사람의 이야기까지 암시할 수 있습니다.

야구사진을 찍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타자가 공을 기다리는 긴장감, 관중석의 웅성거림, 동료 선수들의 시선, 경기장의 열기와 소음 등은 카메라 렌즈 너머 ‘프레임 밖’에 존재하지만 그 순간의 ‘온전한 경험’을 이루는 요소입니다. 문철진 작가는 ‘프레임 밖의 상황도 프레임 안에 어떻게 담을까’를 고민하며 사진의 본질적 가치를 확장시켰습니다.

2. ‘보이지 않는 것’을 담는 사진의 기술과 철학

보이지 않는 것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일은 단순한 테크닉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진가의 ‘관찰력’과 ‘통찰력’, 그리고 ‘표현에 대한 의지’가 결합된 창조적 행위입니다.

  • 관찰력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진가는 보이는 피사체를 넘어, 주변 환경과 상황, 시간의 흐름, 심지어 관객이 느낄 감정까지 포착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적인 관찰’입니다. 야구경기 중에도 단순히 공이 날아가는 순간만 찍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표정, 몸짓, 경기장의 분위기, 심지어 관중들의 반응까지 두루 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프레이밍과 구성
    ‘보이지 않는 것’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는 프레임 구성이 중요합니다. 사진가가 무엇을 프레임 안에 포함시키고, 무엇을 제외할지 결정하는 과정은 메시지를 크게 좌우합니다. 예를 들어, 경기장의 일부 관중석이나 배경을 포함시켜 경기의 긴장감과 현장의 소음을 암시하거나, 선수의 역동적 움직임과 함께 주변의 흐릿한 배경을 담아내어 순간의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프레임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잇는 경계이며, 사진가의 시각과 감성이 투영되는 공간입니다.
  • 빛과 색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는 빛과 색감입니다. 빛의 방향, 강도, 색온도, 명암 대비 등은 사진 속 피사체의 물리적 존재감을 넘어 그 분위기와 감정을 환기시킵니다. 어두운 그림자가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따뜻한 햇살은 평온함과 희망을 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빛과 색감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강력한 매개체입니다.

3. 내 경험에서 느낀 ‘보이지 않는 것’의 힘

나 역시 촬영을 하며 수없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담으려 애썼습니다. 한 장의 사진에 서사를 담는다는 것은 결국 눈에 보이는 인물이나 대상만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맥락, 관계, 시간까지 포함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듯한 사진, 길가에 서있는 어르신의 뒷모습에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진, 혹은 한낮의 햇살 아래 쓸쓸히 남겨진 의자 하나에서 이야기가 느껴지는 사진 등은 모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의미’를 시각화한 결과물입니다.

또한, 프레임 밖의 상황을 상상하게 만드는 사진은 관객과 사진가 간의 소통이 깊어지고, 사진 한 장이 던지는 메시지와 감동의 폭이 넓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촬영 시 종종 프레임 밖에서 벌어지는 상황까지 상상하며 순간을 포착하려 합니다. 이것이 사진의 ‘완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4. 물리적 대상 없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담는 방법

  • 스토리텔링을 염두에 두기
    사진 한 장에 ‘이야기’를 담으려면 단순히 예쁜 풍경이나 멋진 인물 사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배경과 주변 환경, 빛과 그림자의 조화, 심지어 사진을 보는 이가 느낄 감정까지 고려하는 ‘총체적 스토리텔링’이 필요합니다. 이는 사진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늘 스스로에게 던져야 함을 뜻합니다.
  • 상상력과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
    사진은 고정된 이미지지만, 보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해석과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담기 위해서는 사진가가 모든 것을 명확히 드러내기보다, 여백과 암시를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즉, 프레임 안에 단서들을 숨겨두고 관객이 ‘프레임 밖의 이야기’를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입니다.
  • 감각의 확장
    눈에 보이는 현실뿐 아니라 냄새, 소리, 촉감, 심지어 그 순간의 공기와 기분까지 떠올리게 만드는 사진이 있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제대로 담아낸 것일 수 있습니다. 사진가는 자신만의 감각을 확장시켜 다섯 감각을 넘어서는 ‘마음의 눈’으로 촬영에 임해야 합니다.

5. 결론: 사진,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담는 예술

결국 사진은 ‘물리적 대상을 단순 복제하는 기계적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순간의 본질을 포착해 시간을 뛰어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분위기, 상황, 관계, 시간을 포함합니다.

문철진 작가가 야구사진에서 ‘프레임 밖의 상황도 프레임 안에 담기’를 강조한 이유는 사진이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시각 언어로 승화시키는 예술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진 한 장으로 그 장면을 넘어서는 더 넓은 세계를 느끼고, 그 순간의 숨겨진 의미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담는 사진은 단순히 사진가의 기술을 넘어선 ‘철학적 태도’이며, 그 태도를 품은 사진 한 장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관객에게 새로운 감동과 깨달음을 줍니다.

사진가라면, 단순한 피사체의 기록을 넘어 그 뒤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담을지, 언제나 고민하고 실험해야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사진은 더욱 깊어지고, 우리 삶의 의미도 확장될 것입니다.